국회의원 출신 지사와 공무원 출신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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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탱해야 할 두 수레바퀴가 삐걱거리고 있다. 집행기관인 지방자치단체와 의결기관인 지방의회, 두 기관 수장인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와 구성지 제주도의회 의장이 감정을 자극시키며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기관은 특성 상 긴장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지만 도를 넘어선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인사청문회 보이콧’에 이어 ‘새해 예산안 부결’까지 치달으며 정치력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

제주도가 제출한 예산안이 도의회에서 부결된 지난 15일.

원 지사는 도의회 심사 결과 삭감 후 신규 비목을 설치하거나 증액한 사업을 선심성으로 보고 타당한 이유 제시를 요구했다. 집행부의 동의 없는 의회의 증액은 불가능하다는 법과 원칙을 여러 차례 공언해온 터였다.

이에 구 의장은 동의 여부를 밝히라며 발언을 제지하다가 마이크 사용을 중단시키고 정회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끝내 구 의장은 원 지사의 부동의 입장으로 간주, 표결 끝에 부결시켰다.

이날 원 지사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참담합니다’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남겼다. 원 지사는 또 공직 내부 소통망을 통해 “…법상 보장된 동의권에 대한 최소한의 절차만 지켜달라는 것입니다…도의회는 언젠가 저의 이러한 충심을 알아줄 것…”이라는 심경을 피력했다.

반면 구 의장은 정례회 폐회사를 통해 “원 지사도 도민들의 건의에 따라 선심성 예산을 많이 편성하지 않았나. 손톱 밑 가시 같은 민원을 의원들이 받아들여 어쩔 수 없이 증액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구 의장은 지난 17일 기자 간담회에서는 “의사일정 진행은 의장의 몫이다…세 차례나 발언을 중단하라고 했음에도 원 지사가 발언을 이어간 것은 일종의 쇼”라는 입장을 전했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은 지난 10월 구 의장이 ‘예산 협치’를 제안하자 제주도가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예견돼왔다.

제주도 산하 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이후 인사권을 놓고도 갈등이 빚어졌다. 도의회가 지난 10월 제주에너지공사 사장 내정자에 대해 부정적인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는데도 제주도가 임명을 강행하자 제주발전연구원장 내정자 인사청문회를 잠정 거부했다. 지난달에도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 내정자에 대해 부적격 취지의 의견이 제시됐지만 예정대로 취임식은 진행됐다.

원 지사가 지난 9월 공공기관장 전면 교체 카드를 꺼내들고 임기가 남은 기관장까지 사표를 받았지만 후속 인사는 혁신보다는 특정 인맥 챙기기와 선거 논공행상이라는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국 유일의 특별자치도체제에서 막강한 인사권과 예산 편성권을 놓지 않겠다는 ‘제왕적’ 도지사, 도정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밀리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겠다는 도의회 의장 이미지를 심어주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이다. 야권과의 연정에 이어 도의회와의 예산 편성권 공유 및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상설화를 제안한 경기도, 국외연수비용이나 업무추진비 등을 자진 삭감하는 타지역 지방의회 소식이 부럽기만 하다.

국회의원 3선 출신의 원 지사와 고위 공무원 출신으로 의회에 입성한 구 의장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공직 재직 시 이른바 ‘구사단’을 이끌 정도로 리더십을 인정받았던 구 의장은 통이 큰 생각, 투명한 행정경험을 떠올리며 집행부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원 지사도 의원 시절을 생각하며 전국 학력고사와 사법고시 수석 타이틀을 가질 정도의 ‘똑똑한 머리’로 의회와의 협력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청마의 해’에 예산안 등 현안이 역동적으로 마무리되고, 새해 ‘양의 해’를 맞아 순하고 평화로운 꿈이 기다려진다.







<김재범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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