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특유의 정미도구...육지부 절구보다 훨씬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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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재발견 37-남방아...밭작물 도정 까다로워 대용량으로 제작

넓게 팬 홈에 곡식을 넣고 절굿공이로 찧어 껍질을 벗기거나 빻는 정미도구인 방아.

 

김정(1486~1521)은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에 “제주도에는 방아는 있지만 디딜방아(발로 디뎌 곡식을 찧거나 빻는 방아)는 없다”고 썼다. 여기에서 방아는 통나무를 파서 만든 남방아를 일컫는 것으로, 주로 남방애로 불렸다.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남방아는 1991년 6월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됐다. 이 남방아는 제주대 박물관이 1971년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농가에서 구입했다.

 

제주에서 생산된 방아는 재질에 따라 두 가지로, 나무로 만든 남방아와 돌을 다듬어 만든 돌방아가 있다. 제주 사람들은 절구와 연자매를 통틀어 ‘방에’나 ‘방이’, ‘방애’라고 불렀다.

 

‘방엔 보난 굴묵낭 방애~ 절귄 보난 도애낭 절귀~’(방안을 보니 느티나무 방아 절굿공인 보니 복숭아나무 절굿공이). 이는 제주에 전승되는 민요의 노랫말로 남방아의 재료로는 굴묵낭, 절구의 재료는 도애낭(복숭아나무)을 으뜸으로 쳤다는 점을 말해준다.

 

남방아는 통나무를 깊게 파 중앙에 동그랗게 구멍을 내 ‘돌혹’(돌확)을 끼워 넣어 제작했다. 남방아는 나무의 재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하나의 통나무로 제작된 것을 최고로 쳤다. 공이는 남방아에 곡식을 넣고 찧는 도구로 대부분 밤나무나 감나무로 제작됐다.

 

한국 본토에선 보통 절구작업을 두 사람이 하지만 제주 남방아는 세 명에서 최고 여섯 명이 달려들 만큼 유난히 크다. 셋이 찧으면 ‘세콜방애’, 여섯이 찧으면 ‘여섯콜방애’로 칭해졌다.

 

작업자끼리 장단을 척척 맞춰 작업하면 곡식을 빨리 찧지만 서툴 경우 공이가 서로 부딪치고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옛사람들은 ‘세콜방애’ 찧는 소리를 들어보면 그 집안 시어머니와 며느리 등 여성들이 얼마나 화목하게 지내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방아 찧는 소리가 전혀 장단이 맞지 않고 어지러우면 아무리 만석꾼의 집안이라도 머지않아 기울 징조라고 내다봤던 것이다.

 

제주의 남방아가 유독 큰 이유는 농업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전경지 면적 중 57.4%가 논인 데 반해 제주에서 논은 0.5%에 그쳤다. 한국 농업문화는 도작문화(稻作文化)인데 제주는 전작문화(田作文化)인 것이다.

 

논에서 나는 벼의 탈곡은 껍질만 벗기면 끝나지만 밭에서 재배되는 보리나 조는 껍질을 벗기고 다시 으깨야 하기 때문에 탈곡이 더 어려웠다. 제주의 남방애가 탈곡의 도구로써 대용량으로 제작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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