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리턴'과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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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국내 굴지 기업의 한 간부가 해외 출장 중에 스튜어디스에게 폭언·폭행한 이른바 ‘라면상무’사건을 시작으로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갑질’에 대해 분노한 적이 있었고 ‘갑질’이라는 단어는 힘과 권력을 갖고 부당한 행위를 하는 사람에 대해 비판적인 단어로 자리잡았다.

‘라면상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은 회사 인트라넷에 “승무원 폭행사건 현장에 있었던 승무원이 겪었을 당혹감과 수치심이 얼마나 컸을지 안타깝다”고 글을 올렸다. 그는 이어 “앞으로도 항공기의 안전이나 운항을 저해하는 행위가 발생해도 규정과 절차에 따라 일관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정당하게 인정받을 것”이라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이렇게 승무원을 위로했던 조 부사장이 2014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우리를 분노케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KE086 항공기는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가던 중 탑승구로 돌아가 사무장을 내려놓고 나서 다시 출발했다. 한 승무원이 일등석에 타고 있던 조 부사장에게 견과류를 건넸고 조 부사장은 “무슨 서비스를 이렇게 하느냐”면서 승무원을 혼냈다. 조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를 책임진 사무장을 불러 서비스 매뉴얼을 확인해보라고 요구했고 사무장이 태블릿컴퓨터에서 관련 규정을 즉각 찾지 못하자 내리도록 했다. 대한항공은 승객의 의향을 물은 다음에 견과류를 접시에 담아서 건네야 하는데 무작정 봉지째 갖다준 것이 규정에 어긋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땅콩 리턴’으로 불리면서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물론 임원으로서 자사 기내 서비스에 대해 점검을 할 권리와 의무가 있지만 문제점을 해결하는 절차나 방식은 상식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 조 부사장의 행동으로 항공기에서 내린 사무장이나 야단을 맞은 승무원, 이들은 당혹감·수치심을 넘어 해고의 ‘공포’까지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지난달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지난 10월 7일 경비원 이모씨가 분신자살을 시도한 뒤 치료를 받다가 한 달만인 지난달 7일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족과 노조 측은 이씨가 아파트 입주민의 지속적인 언어폭력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지난 3일 이 아파트 입주민들은 용역업체를 다른 곳으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이 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원 등 용역 노동자 106명에게 해고 예고 통보를 했다. 동대표회장은 “각종 비리와 관리부실로 경비원 이모씨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도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는 내부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라고 설명한 것으로 보도됐다. 100여 명의 노동자가 겨울 칼바람 속에 파업에 나서기로 결정했다는 후속 보도도 있었다.

도내에서도 부당 노동 행위 및 부당 해고 행위가 끊이지 않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지방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접수된 도내 부당 노동 행위 및 부당 해고 등 구제 신청 사건은 무려 123건에 이르고 있다.

도내 노동단체 관계자는 이와 관련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근무할 수 있도록 당국의 체계적인 관리·감독 강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고용 안정을 위협받으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하루하루의 삶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

‘나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 을(乙)들이 위 사건들을 보면서 분노하고 있다. 나 역시 분노한다.







<부남철 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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