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고유한 특성이 가장 잘 반영된 돌 문화가 앞으로도 계승됐으면 하는 바람 뿐입니다. 이를 위해 금릉석물원을 만들었지만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어서 착잡한 심정입니다.”

 

장공익 명장(82)은 26세 때 처음으로 망치와 끌을 잡고 돌을 다듬기 시작, 50여 년 동안 석공예의 길을 걸어왔다.

 

1993년 노동부로부터 석공예 명장으로 인정받은 그의 조각들은 제주를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등 각국의 정상들에게 선물되기도 했다.

 

장 명장에게 돌은 단순한 작품 활동의 재료가 아닌 제주의 문화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는 “화산 활동으로 탄생한 제주는 돌의 섬”이라며 “제주다운 소재를 찾던 중 돌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고 밝혔다.

 

장 명장은 특히 돌하르방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는 “돌하르방은 제주를 상징하는 조형물이자 수호신”이라며 “최근 들어 돌하르방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장 명장은 이어 “단단하고 투박한 현무암은 고급스러운 느낌은 없지만 억척스러웠던 제주인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재료”라며 “돌하르방에는 제주의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망치와 끌로만 돌을 깎고 다듬던 시절의 돌하르방은 조각의 굴곡이 작아 투박한 멋이 있었다”며 “하지만 기계를 사용해 만들어낸 현재의 돌하르방은 얼굴의 윤곽이 너무 뚜렷해지는 등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동안 장 명장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돌하르방 등 석공예 작품들을 전시한 곳이 금릉석물원이다. 그는 경제적 수익이 아닌 제주의 돌 문화를 알리기 위해 이곳을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관광객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금릉석물원이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

 

장 명장은 “석물원 부지 대부분이 공유지로 1년에 300만원이던 임대료가 10배 이상 올랐는데 수입은 감소해 경영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며 “적자가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있어 더 이상 석물원을 운영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에게는 평생을 일궈온 석물원이 문을 닫는다는 사실보다 제주의 돌 문화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장 명장은 “무엇보다 자식과 같은 조각들이 뿔뿔이 흩어져 팔려나가는 것이 가슴 아프다”며 “행정에서 석물원을 돌 문화 공원으로 조성한다면 모든 조각들을 무상으로 기증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돌하르방 조각 기술을 배워간 제자가 50명이 넘지만 지금도 석공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제자는 5명도 안 된다”며 “아들도 25년 전부터 돌하르방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수익이 시원치 않아 언제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장 명장은 “돌하르방을 비롯한 제주의 돌 문화 보존·발전을 위해서라도 행정이 석공예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고 재를 돌하르방 안에 안치해서 석물원에 전시, 제주의 돌 문화를 지키는 수호신이 될 것”이라고 제주 돌 문화 보존에 대한 의지를 표현했다.

 

한편 제주시 한림읍 출신인 장 명장은 1971년 제1회 민예품경진대회에서 제주도지사상을 수상했으며 1993년 자랑스러운 제주인에 선정됐다. 또 1993년 신한국인으로 지정됐으며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