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복리 주민들의 ‘통 큰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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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3월. 미국 뉴욕 인근 작은 동네인 아이슬립에서 배출된 쓰레기 3168t을 실은 바지선이 항구를 출발했다. 지역 내에서 처리할 방법이 여의치 않자 쓰레기를 받아 줄 곳을 찾아 무작정 항해에 나선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앨라배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텍사스 등 미국 남부 6개주를 전전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중남미로 방향을 틀어 멕시코, 벨리즈, 바하마까지 갔지만 거기서도 쓰레기를 흔쾌히 받아주는 곳을 찾지 못했다.

결국 쓰레기는 6개월 동안 6개주, 3개국을 떠돌아 다니는 6000마일의 항해 끝에 최초 출발지인 아이슬립으로 되돌아왔다.

‘님비(NIMBY)’라는 용어가 생겨난 배경이다.

‘우리 뒷마당에는 절대 안된다’는 의미를 가진 ‘Not In My Back Yard’의 각 단어 첫 글자를 이어 만든 신조어다.

님비 현상과 유사한 용어로 ‘바나나(BANANA)’ 현상이 있다.

‘어디에든 절대 아무것도 짓지 말라(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는 뜻이다.

님비 현상은 시설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자신의 거주지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고, 바나나 현상은 해당 시설 자체를 무조건 반대한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님비 현상이나 바나나 현상은 쓰레기 소각장(매립장), 하수처리장, 장애인 시설, 노숙자 시설, 화장장, 납골당 등 특정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지역 이기주의를 뜻하는 점에 공통점이 있다.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주민들이 통 큰 결단을 내렸다.

광역 폐기물처리장인 제주환경자원센터(매립·소각장)가 마을 부지 내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해 오던 기존 입장을 접고 유치에 나섰다.

전체 도민들을 위해 어딘가에는 반드시 들어서야 하는 환경 기초시설이라면 마을에서 그 짐을 떠안자며 통 큰 결단을 내린 것이다.

주민들은 지난해 마을이 제주환경자원센터 이전·신설 후보지 3곳에 포함된 이후 주민설명회를 거부하며 최근까지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4회에 걸쳐 선진 환경자원화 시설을 견학하고 수 차례에 걸친 제주시장과의 간담회 등을 통해 그동안 견지해 오던 혐오시설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게 됐다.

폐기물처리장이 단순히 쓰레기를 매립하고 소각하는 시설이 아니라 자원을 회수하기 위해 불가피한 시설이라는 점을 받아들인 것이다.

정동면 이장을 비롯한 청년회장, 노인회장, 부녀회장, 어촌계장, 개발위원장 등 동복리 주민대표들은 지난달 30일 제주시청을 찾아 제주환경자원센터 유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전날 실시된 주민투표 결과를 소개했다.

주민대표들은 “만19세 이상 실제 거주하는 주민 390명 중 258명이 투표에 참여한 결과 찬성이 180표로 반대 70표 보다 2배 이상 높게 나왔다”며 “주민 모두 투표 결과를 존중키로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주민들은 개표 직후 결과에 따라 센터 반대대책위원회를 해산, 유치추진위원회로 전환했다.

미국은 27년 전 아이슬립의 바지선이 결국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랜 방랑 끝에 출발지로 되돌아가면서 님비 현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굴욕’을 겪었다.

하지만 제주 섬은 동복리 주민들의 대승적인 결단으로 모두가 보다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얻게 됐다.

앞으로 남은 일은 주민들의 소박한 바람대로 행정당국과 마을 간 약속된 지원 사업이 차질없이 이행되는 일 뿐이다.

도민들도 동복리 주민들이 마련한 ‘통 큰 선물’의 의미를 곱씹어 볼 일이다.

<김문기 사회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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