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어려움 이겨내고 참 배움터로 자리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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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초등학교
   

한일강제병합 당시 제주지역은 제주군, 정의군, 대정군 등 3군제가 실시됐었으며 현재의 중문지역은 대정군 소속 좌면(左面)이었으며 서귀포시(서귀읍)는 정의군의 우면(右面)이었다.

 

중문초등학교의 전신인 좌면공립보통학교는 당시 행정구역 이름을 따 1927년 3월 1일 설립인가를 받고 그해 5월 3일 중문 천제연 폭포 옆인 중문동 1489번지 약 6000여 ㎡ 부지에서 개교됐다.

 

▲중문초등학교의 탄생
1935년 4월 1일 전라남도령에 의해 제주지역 면(面) 이름이 중복돼 이에 따른 혼동을 막기 위해 면사무소 소재지의 지명을 따 면의 명칭이 바뀌게 된다.

 

이에 따라 좌면은 중문면으로 바뀌고 학교 명칭 역시 소재지의 지역 명칭으로 바뀌면서 좌면공립보통학교는 1935년 4월 25일 중문공립보통학교로 이름이 변경됐다.

 

이어 1938년 4월 1일 중문공립심상소학교로 바뀌었다가 1941년 4월 1일 중문공립국민학교로 다시 교명이 변경됐다.

 

이에 앞서 1941년 2월 25일 천제연 옆에서 현 위치인 중문동 1984번지로 학교가 옮겨졌다.

 

당시 천제연 옆 학교 부지가 냇가에 접해 있어 학교 확장 곤란과 함께 겨울철 강한 북서계절풍 때문에 춥고, 장마철에는 사방에서 샘이 솟아 운동장 관리가 어려워 옮겨졌다.

 

특히 풍수적으로 동쪽에 원동산에 가려져 아침 햇빛을 받을 수 없어 큰 인물 배출이 안된다는 이유도 이전에 한 몫을 했다.

 

이어 중문공립국민학교는 해방 후인 1949년 12월 31일 중문국민학교를 거쳐 1996년 3월 1일 중문초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됐다.

 

2005년 당시 중문초등학교총동창회(당시 회장 현상호)와 중문초(당시 교장 이성무)는 개교 80주년 기념행사를 실시하면서 9월 21일 좌면공립보통학교가 첫 문을 열었던 곳에 ‘중문초등학교 발상지(發祥地)’라는 기념비를 세웠다.

 

▲격동의 중문초등학교
4·3사건과 관련 1948년 11월 계엄령으로 인해 군인들이 학교에 주둔하게 되고 약 3주간 휴교 되면서 학업 중단이 불가피해졌다.

 

또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후퇴 때는 학교 시설이 피난민 수용소로 이용되면서 학생들은 약 1개월 간 마을의 공공시설물에서 학업을 이어가야만 했다.

 

4·3과 한국전쟁의 고초를 겪은 중문초는 1955년 또다시 ‘화마(火魔)’를 겪게 된다.

 

학생 수가 점차 늘어나자 중문초는 1955년 10월 13일 교실증축을 위한 기공식을 열고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11월 13일(일요일) 오후 1시께 작업자의 부주의로 담뱃불이 대팻밥에 옮겨 붙으며 순식간에 아이들의 배움터는 한 줌의 재로 변하고 말았다.

 

그 후 약 2년 뒤인 1957년 3월에 새로운 석조건물이 준공됐다.

 

▲사랑과 꿈을 키우는 중문초
중문초는 성실 근면이라는 교훈 아래 창의 인성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교육 내용 및 방법, 평가제도, 교원 능력, 진로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기존의 획일적·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 스스로가 참여하는 자기 주도적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중문초는 대한민국 관광1번지에 위치해 있어 전 도민의 관광 요원화 시책 추진의 일환으로 전교생을 대상으로 관광마인드를 함양하고 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켜 제주의 정체성 확립을 도모하기 위해 관광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아름다운 예술여행-1학생 1악기 재능 키움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문화 예술적 소질과 적성을 발견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감성교육을 전개하고 있다.
조문욱 기자 mwcho@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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