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의 적 침입 막아낸 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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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용으로 쌓은 돌담인 제주의 성담으로는 3성(제주성, 대정성, 정의성)과 9진(화북진, 조천진, 별방진, 애월진, 명월진, 차귀진, 모슬진, 서귀진, 수산진), 해안을 따라 300리에 축조된 환해장성이 있다.

 

방어유적인 성담은 다른 소규모 유적들과 달리 그 범위가 넓고 축성의 재료가 돌이기 때문에 도로 개발과 건축 등의 각종 개발로 상당부분 훼손된 실정이다. 환해장성은 제주 해안을 전체적으로 둘러친 성으로 ‘제주의 만리장성’으로도 일컫는다.

 

일명 ‘고장성(古長城)’, ‘장성(長城)’이라고도 한다. 환해장성의 축조는 고려 때 삼별초가 진도를 거점삼아 대몽항쟁을 벌일 때 시작되었다. 당시 고려의 개경 정부는 진도 삼별초의 제주 점령을 저지하기 위해 군사를 보내 방어시설을 설치하게 했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환해장성이다.

 

원종 11년(1270년) 삼별초가 제주를 장악했는데 이후 제주 삼별초도 환해장성을 계속 쌓았다. 이후 환해장성의 용도는 여몽(麗蒙)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왜구와 이양선(異樣船)의 출몰이 잦아지면서 환해장성은 계속 보수, 혹은 신축됐다. 지금까지 도내 곳곳에 남아 있는 환해장성의 높이는 대략 2m 안팎이나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처럼 4m나 되는 것도 있다. 조선시대 제주의 3읍과 9진성은 도적이나 왜적 등 외부세력으로부터 제주를 보호하는 방어체계이다.

 

 

3읍성과 9진성은 세종 21년(1439년) 제주도안무사(濟州都安撫使) 한승순에 의해 본격 정비된 후 을묘왜변과 임진왜란을 계기로 더욱 강화돼 19세기 이양선 출몰 시기까지 정비가 이뤄졌다. 3읍성은 제주읍성, 대정읍성, 정의읍성이다. 제주의 읍성은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 군사적인 기능과 행정적인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따라서 읍성은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이고, 당시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에 축조했다. 제주읍성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태종 8년(1408년)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정·정의읍성은 태종 16년(1416년)에 3읍으로 분리된 후 축조됐으며, 성산읍 고성리에 축조된 정의읍성은 세종 5년(1423년)에 현 위치인 진사리(晋舍里·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로 옮겨졌다. 이때부터 제주도는 1목 2현의 3읍 행정체제가 설치되었고, 신설된 2현에는 읍성을 축조했다.

 

 

진(鎭)은 삼국시대 말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설치된 무장성곽 도시 또는 군사행정구역이다. 시기별로 진의 설치 목적은 다소 다르지만, 북방의 변경과 해안지대에 구축됐다.

 

진은 신라 말기 상업상 필요에 의해 처음 설치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무장성곽 도시 또는 군사행정구역으로 존재하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순수한 군사적 거점지역의 성격으로 설치됐다.

 

진성의 축조는 세종 21년(1439년)에 제주도안무사 한승순이 차귀방호소와 수산방호소의 축조를 건의하면서 시작돼 세종 25년(1443년)에는 명월, 서귀방호소에도 진성의 축조를 건의했다. 중종 5년(1510년)에는 제주목사 장림(張琳)이 2개의 진성을 쌓았으며, 7개의 진성 축조를 건의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수산, 차귀 외에도 명월, 별방, 서귀, 동해진성의 축성 기록으로 나타나 있다. 조천진성은 선조 23년(1590년)에 중창된 것으로 보아 16세기에는 이미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9개의 진성 가운데 8개소는 이미 16세기 초에 축조, 개축되어 있었다.

 

 

모슬진성은 숙종 2년(1676년)에 동해진성에서 옮겨졌으며, 화북진성은 숙종 4년(1678년)에 축조됐다. 이로써 17세기에는 현재의 l3읍성과 9진성에 대한 정비가 완성됐다. 환해장성과 읍성, 진성은 기본적으로 군사 방어시설의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 이들 성담의 축성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도민들의 노동력이 동원됐다. 외부세력에 맞서 싸운 제주인들의 고된 노동과 역사의 흔적을 말해주는 유산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환해장성의 경우 제주시 화북동과 애월읍, 조천읍 북촌리 일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등 10여 곳에 불과하다. 1960년대 이후 개발바람이 불면서 이들 환해장성은 파괴됐다. 최근에는 해안도로 개설이 환해장성 훼손과 파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현봉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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