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제주의 돌도 소중한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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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원 원장 김정수씨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창작에 혼신
   
 (사진) 폐석장에 버려진 돌멩이와 돌가루를 접착, 다양한 형태의 석부작과 석공예품을 만들어 온 신비원 원장 김정수씨가 대형 아치 모양의 문 앞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석(현무암)의 가치와 효능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제주 현무암은 단순한 검은 돌이 아니라 제주의 보물입니다.”

제주시 노형동 신비의 도로에 자리 잡은 ‘신비원’ 원장 겸 대표인 김정수씨(72).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김 원장은 석부작을 만드는 데 혼신을 바치고 있다.

돌 위에 식물을 키우는 게 석부작이지만 그는 버려진 돌을 활용하고 있다.

아치 모양의 문,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조각품, 물 위에 뜨는 석부작 등은 폐석장에 버려진 돌을 서로 맞춘 것으로 최근 예술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돌멩이와 돌가루를 천연접착제로 붙이는 현무암 가공 특허를 보유했다. 천연접착제의 주성분은 제주의 흙과 식물인데 오랜 연구 끝에 찾아낸 ‘비법’이다.

“올 여름 중국 상하이에서 온 경제계 고위 인사가 ‘사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다. 중국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하더라고요. 처음엔 솔깃했지만 ‘내 나이가 칠십이 넘었으니 제주에서 남은 생을 살고 싶다’며 거절했죠.”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중국에 기술을 가르쳐 주면 금방 ‘짝퉁 석부작’이 판을 치고, 제주 현무암은 신뢰와 가치가 떨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전북 고창 태생으로 분재가였던 그는 TV와 라디오에 출연, 구수한 입담과 재치 있는 진행으로 ‘언제나 청춘’이라는 프로에 13년간 고정 출연했다.

88올림픽을 전후로 경제 호황을 맞아 분재와 원예가 인기를 끌면서 1987년 서울 서초구에 ‘서울분재아카데미’를 운영했다.

또 TV에 1300회나 출연한 ‘스타 강사’로 이름을 날리는 가운데 분재·원예 서적과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하는 출판사를 차렸다.

그러나 1997년 IMF(외환 위기)에 출판사는 직격탄을 맞았다. 그동안 투자한 10억원을 까먹었고 빈털터리가 됐다.

갈 곳이 없던 그는 제주도에 있는 현무암이 문득 떠올랐다. 관광지를 소개하는 방송 프로에 출연했다가 비포장 길에 널려 있는 돌이 발에 계속 채였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1998년 제주에 정착하게 된 그는 지천에 널린 돌멩이로 석부작을 만들며 위안을 삼았다.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분재회사가 우연히 그의 작품을 보고는 강사로 초빙했다. 당초 열흘 일정이었지만 두 달을 미국에서 체류하며 강연비로 2000만원을 벌고 귀국했다.

이 돈은 2009년 1만6000㎡의 부지에 석부작 공원 및 작품 전시장을 갖춘 ‘신비원’을 설립하는 종자돈이 됐다.

잘 버티면 민생고는 해결됐다 싶었다. 하지만 또 한 번 시련이 찾아왔다. 제2의 고향이라 여겼던 제주에서 사기를 당하고 만 것이다.

영농법인 대표이사를 1년간 맡아주면 작품 판매와 융자를 알선해주겠다는 지인의 말을 덥석 믿었다가 2년 간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많은 작품만 날리고 손에 쥔 것은 없었다.

“당시 충격으로 극단적인 선택이 떠오를 정도로 방황했지만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없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마음을 고쳐 잡았습니다.”

그는 절망과 고통을 잊기 위해 오로지 창작에만 매달렸다. 2009년 제주도 공예품대회에서 도지사상, 2010년 전국 공예품대회에서 입상을 하면서 그가 흘린 눈물과 땀은 결실을 맺었다.

또 지난 4월 열린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에서 그는 메인 작가로 초청을 받았다. 30t에 달하는 대형 제주석 조형물을 3등분 해 카페리에 실어 행사장으로 보낸 후 현지에서 다시 설치했다.

버려진 돌멩이를 돌가루로 붙여서 만든 그의 작품은 거의 자연석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하다. 가공품이어서 반출이 가능한데도 공항과 항만에선 “자연석 반출은 불법”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김 원장은 “제주 현무암을 도로와 건물 골재용으로 매립하는 게 안타깝다”며 “최영 장군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말했는데, 앞으로는 제주의 돌을 황금처럼 보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말을 맺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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