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마을 보호수를 찾아서(12-하원동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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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륜앞에 고단한 세월 잊다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남도 삼백리//술 익은 마을마다/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박목월의 ‘나그네’ 전문)

일상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면 가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나그네가 되어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 땅의 길이란 길은 모두 자동차의 홍수로 변해버렸고,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사색에 잠겨 길을 걷는 ‘정처없는 나그네’가 되기란 과거 시대의 꿈일 뿐이다.

그렇다고 길이 없는것은 아니다.

삶의 무게가 힘들다고 느낄 때,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의 삶을 되돌아보고 싶을 때 ‘나무와의 만남’을 가져보자.

한적한 시골 마을,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 느긋함이 있는 그 곳에 있는 나무는 하찮은 세상사에 매달리며 번민하는 우리들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가만 있어도 땀이 비오듯 흐르는 폭염속에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팽나무를 찾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과거 몇 차례 만남을 가졌던 터라 오래된 나무가 주는 ‘위엄’보다는 반가움이 앞섰다.

당당하게 마을 안길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우람하게 자란 나무는 오랜만에 찾은 이방인을 나무라기보다 ‘그늘 밑에서 땀에 젖은 몸을 식히고 가라’며 반긴다.

약 380살로 추정되는 나무는 키 12m, 가슴높이 둘레 3m로 마을 보호수 치고는 큰 축에 들지 않는다.

나무는 기둥 곳곳에 자리잡은 사람 머리만한 것에서부터 주먹만한 크고작은 ‘혹’을 통해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음을 보여준다.

용암이 흘러내리다 중간에 굳어버린 듯 볼썽사납게 튀어나온 상처 투성이의 혹을 통해 나무는 말없이 꾸짖는 것같다.

마치 ‘살아온 세월 만큼이나 볼 일 못 볼일 다 겪으며 지금껏 살아온 자신에 비하면 100년도 안되는 짧은 삶이 힘든들 얼마나 한다고 앙탈이냐’는 듯이.

하원동 팽나무는 지난 1970년 새마을운동으로 마을안길 확장·포장사업이 이뤄지면서 베어질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행정당국이 나무를 베어낸 뒤 곧은 길을 개설하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마을 주민들이 수 백년 동안 정자나무로써 쉼터를 제공해 온 나무를 베어내는 일은 옳지 않다며 반대 운동을 벌여 나무는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마을 안길은 지금까지도 나무가 도로 한 가운데 버티고 서 있는 보기드문 도로로 남아있다.

주민들은 결국 비좁은 도로로 인한 불편함을 감수키로 하고 대신 나무를 선택했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나무에 대한 주민들의 사랑이 나무를 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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