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마을 보호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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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서귀포시 서홍동 녹나무
서귀포시내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곳에 수도원이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나무를 찾아가는 길에 이처럼 뜻하지 않은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복자수도원(서귀포시 서홍동) 정문 안 오른쪽 자리에 우람한 자태로 선 녹나무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아무런 감동을 못 느꼈다.

가슴둘레를 보고 그저 ‘오래되긴 오래된 나무구나’라는 생각 정도가 나무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그런데 나무를 보는 순서대로 나무가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사방을 돌아가며 나무의 전체 모습을 천천히 둘러보면서부터 가슴속에 동요가 일었다.

여러 갈래로 하늘로 솟아 오르다 간간이 뒤틀리고 휘었어도 결코 난삽하지 않은 줄기에는 여느 나무에서는 볼 수 없는 기품이 깊게 배어 있었다.

키가 17m, 가슴높이 둘레 3.9m에 300살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3m 높이에서 두 갈래로 분리되어 뻗어 오르다 다시 각각 5∼6개의 줄기로 나뉘어 지면서 사방으로 고르게 뻗었다.

특히 다른 줄기와 달리 1m 높이에서 남쪽으로10여 m 가량 뻗어 나가다 직각으로 방향을 틀어 하늘로 뻗어간 줄기가 깊은 인상을 준다.

그냥 뒀으면 부러졌을 이 가지에 누군가가 자연석을 이용해 버팀목을 해 줬다.

가지 높이에 맞춰 층층이 쌓아올린 돌 3개가 앙증맞다. 서쪽 마당 한가운데서 바라 본 나무는 영락없이 어린 아이를 달래는 어머니의 손바닥을 닮았다.

손가락을 살포시 움겨쥘 듯 말듯한 모습에 비춰진 모습에서 모성애를 느끼는 순간 가슴 밑바닥이 울컥했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나무는 다른 모습으로 서 있다.

나무를 기준으로 북동 방향에서는 10여 개로 보이는 중간 가지가 모두 동쪽으로 치우쳐 있다.

정북 방향으로 몇 걸음을 옮기면 동서로 알맞게 퍼진 모습이다.

남쪽에서 바라 본 나무는 10여개의 가지가 보는이를 찌를 듯이 달려오는 듯한 생동감을 보여준다.

나무는 보는 각도에 따라 ‘천의 얼굴’을 갖고 있음을 또 한번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자리였다.

큰 나무들은 신성한 나무로 여겨져 소원을 비는 당산나무로, 혹은 삶에 지친 몸을 쉬어가는 정자나무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곁을 지켜왔다.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자연에도 인색함이 없다. 밑둥에서부터 중간 줄기까지 감아 올라간 석위(石韋·바위 또는 고목 겉에 붙어서 자라는 상록성 다년초)는 물론 줄기 끝까지 뒤덮은 담쟁이에게도 한마디 투정 없이 의지해 살라고 몸을 내준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줄 수록 나무는 수난을 당하기 일쑤다. 과거에 흔했던 녹나무는 그 효능으로 인해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나무가 되어가고 있다.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으로 해녀들은 각종 연장을 녹나무로 만들었다.

약효가 좋다고 줄기와 껍질이 수난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각종 가구와 조각재로 베어지는 수난을 당했다. 이 곳에서 만난 나무는 다행히 출입이 제한된 수도원 안에 있어 지금까지 살아남았지 않나 싶다.

그저 서 있는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은 나무에게서 많은 것을 받는다.

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사람도 살 수 없다는 말은 그저 생겨난 말이 아님을 모두가 명심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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