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 용담캠퍼스 옛 보관, 옛 제주시청사 허물어
(사진=옛 제주대 본관) 우리나라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김중업 선생이 1964년 설계한 제주대학교 용담캠퍼스 옛 본관. 자서전 작품집 표지에 실린 이 건물은 3년 동안 보존과 철거에 대한 지루한 논쟁을 벌이다 붕괴가 더욱 가속화 됐고, 당국의 근시안적인 태도와 보수비 미확보 등으로 1995년 철거됐다. |
그는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코르뷔지에로부터 지도를 받은 한국인 최초의 제자로 많은 걸작을 남겼다.
문종철 제주대학교 학장과 친분이 있었던 그는 1964년 제주대 용담캠퍼스 옛 본관을 설계했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착공한지 6년 뒤인 1970년에야 완공됐다.
연건평 1900㎡, 4층 건물로 옛 본관 건립은 제주대가 국립대학으로 승격된 첫 해에 이뤄진 중요한 사업이었다.
우주선과 같은 외형에 미래도시를 연상케 하는 건축물로 조개껍질을 펼쳐 놓은 듯한 현관과 경사로의 기하학적인 곡선은 바다가 가지는 생명력과 제주도의 역동적 이미지와 부합돼 현대 건축사의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그의 자서전인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의 표지 앞뒤로 주한프랑스대사관과 제주대 옛 본관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그의 혼과 열정이 담긴 대표작임을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바다모래가 사용되고 내부 공간의 잦은 변경으로 1985년에 이어 1992년 누수현상이 발생했고, 붕괴 위험이 제기됐다.
옛 본관을 둘러싸고 철거와 보존 의견이 논의돼 당시 한국 건축계의 중요한 이슈가 됐고, 최초로 근대 건축물에 대한 보존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1994년 대한건축학회의 안전진단 결과, 보수·보강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고, 대학 측 역시 보수비용과 건물 활용에 난색을 보이면서 1995년 결국 건물이 철거됐다.
일방적인 철거에 대해 많은 건축가들은 제주대 발전사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사진에서만 볼 수 있게 됐다며 한탄을 했다.
제주대 김태일 건축학부 교수는 “옛 본관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원형을 보존하지도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하다가 철거에 이르렀다”며 “예술성과 상징성, 역사적 가치를 넘어서 한국 건축사에 영원히 남을 건축작품이 새로운 생명을 얻지 못하고 사라졌다”며 깊은 아쉬움을 내비쳤다.
아울러 제주의 근·현대사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공공건축물인 옛 제주시청사가 지난해 말 당국의 안일한 대응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주시 삼도2동 관덕정 옆에 자리 잡았던 옛 제주시청사는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된지 4년 후인 1959년 10월 2549㎡ 부지에 연면적 1707㎡ 규모의 2층 건물로 지어졌다.
이 건물은 해방이후 우리나라 근대 건축가(박진후)가 설계한 제주지역 최초의 건물이자 도내에서 처음으로 시멘트벽돌을 사용했다.
제주시청사가 1980년 3월 옛 제주도청사로 사용했던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기까지 21년 동안 시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왔다.
특히 조선시대 제주의 중심이던 제주목관아를 끼고 있고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역사의 중심공간이자 도시발전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성과 상징성을 지녔지만 청사가 이전되면서 민간에 매각됐다.
건축학계에선 옛 제주시청사에 대한 보전·활용방안을 주문했지만 2005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제주시청사와는 달리 사유지라는 이유로 방치되다가 지난해 철거에 이르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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