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동안 등대 지켜...선원 9명 구조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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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민 산지항로표지관리소장 인터뷰
산재등대의 공식명칭은 ‘산지항로표지관리소’로 김장민 소장(58)은 도내 최고참 등대원이다.

1978년 항로표지관리원으로 임용된 이래 35년 동안 등대를 지켜왔다.

우도가 고향인 그는 추자도등대에서 근무할 당시 연애를 했고, 마라도등대에서 신혼을 보냈다. 망망한 밤바다를 바라보며 등댓불을 밝히는 등대지기를 천직으로 삼아 묵묵히 일해 왔다.

김 소장은 “마라도등대에 근무할 때는 3일에 한 번 자리돔을 팔기 위해 모슬포를 나갔던 작은 어선에 승선 해 쌀과 부식을 사오곤 했다”며 “1989년 마라도에 여객선이 취항하기 전까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보통 쓰는 전기는 교류(AC)이지만 등대의 전구와 기계장치 등은 직류(DC) 전기를 써왔다고 밝혔다.

직류전기를 교류로 전환하는 장치가 도입되기 전인 1980년대 중반까지 등대원들은 낮 시간에 디젤발전기를 돌려 배터리(축전지)에 전기를 저장해 두는 일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배터리를 10시간 동안 충전할 경우 3일 동안 등댓불을 밝힐 수 있었다.

우도등대에 근무할 당시 선원 9명을 살린 일화도 있다.

그는 “불법어구를 사용하는 타 지방 고데구리(소형 저인망어선) 배들은 단속을 피해 주의보가 내릴 때면 조업에 나섰다”며 “항로가 아닌 곳에 배가 머물러 있기에 자세히 살펴보니 여수선적 어선이 좌초돼 있어 구조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가 앞장서서 주민들과 함께 좌초된 배에 밧줄을 던졌고, 비바람 속에 바다로 빨려 들어갈 뻔했던 선원 9명은 밧줄을 의지해 빠져나오면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등대에서 일을 했던 몇 몇 동료들은 행정직으로 전환해 사무관까지 승진했으나 그는 우직하게 한 길을 걸으며 등대지기로 남았다. 어릴 적 등대와 함께한 추억 때문이다.

그는 “고향인 우도에서 유일하게 전기가 들어온 곳이 등대였는데 주말에 TV로 중계되는 복싱경기를 보러 가면 그때 마다 등대지기 아저씨가 동네 아이들을 잘 반겨줬다”고 회상했다.

과거에는 등대원(항로표지관리원)이 기피 직종이었으나 최근 수 십대 1의 경쟁률을 보이면서 대학 졸업은 물론 전기·기계·산업 기사 자격 보유자들이 지원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소속 기능직 공무원으로 신분과 정년이 보장되고 관광지로 조성된 아름다운 등대에서 근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제주지역 등대원은 모두 14명이다. 이 가운데 12명은 각각 3명씩 4곳의 유인등대 배치돼 순환 근무를 하고 있으며, 나머지 2명은 무인등대와 등표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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