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출신 3.4기 해병 희생 정신 표상 '해병혼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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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해병대 창설 11주년 맞아 동문로터리에 설립
제주시 동문로터리에 자리 잡은 ‘해병혼탑’은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굳건히 지켜낸 해병대의 애국충정을 상징하고 있다.

이 탑은 또 제주에서 제2의 창군으로 구국의 선봉에 선 해병대의 용맹과 ‘무적해병’의 신화를 낳은 3·4기 해병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1949년 진해에서 창설한 해병대는 2개 대대 1000여 명에 불과한 상태에서 이듬해 6·25전쟁을 맞이했다.

제주에서 교사와 학도병 등을 중심으로 3·4기 해병 3000여 명이 자진 입대하면서 연대급 규모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게 됐다.

전쟁에서 피와 땀, 눈물을 바친 3·4기 해병들은 종전 후 고향에 돌아오자 후대에 남길 상징탑 건립을 의논하게 됐다.

군의관으로 참전해 도솔산전투 등 격전지에서 해병들을 치료한 장시영씨는 해군 대위로 예편한 후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아 당시 돈으로 50여 만환을 기탁했다.

1950년 후반 제주해병 막사장(幕舍長:대대장)이던 이서근 대령은 해병대사령부로부터 50만환을 지원받았다.

특히 문상률·김형근씨 등 3·4기 예비역은 전도뿐만 아니라 흩어진 전우를 찾아 서울과 인천, 부산, 포항을 돌며 모금에 나섰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 군·관의 주도가 아닌 예비역 해병들이 앞장선 가운데 해병대 창설 11주년을 맞은 1960년 4월 15일 제막식을 가졌다.

면적 400㎡(119평)에 기단(1.83m)를 포함해 전체 탑 높이는 10m에 이르고 있다. 탑은 삼다·삼무를 상징하며 삼각(三角)의 구조물로 창공을 향해 쏘아 올라가는 모습을 띄고 있다.

당초 3·4기 3000여 명이 상륙함에 승선, 출정한 것을 기념해 산지항(서부두)에 설치하려던 것을 해병대의 상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왕래가 많은 동문로터리를 최종 부지로 선정했다.

글이 새겨진 탑의 주 방향을 북쪽으로 한 것은 북진 통일의 의미를 담고 있다.

원래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해병혼(海兵魂)’의 휘호를 받았으나 1960년 3·15부정선거에 따른 4·19혁명이 일어나자 서예가 김광추 선생의 서체로 바꾸게 됐다.

그런데 김씨는 해병혼의 글자 중 ‘혼(魂)’의 우변인 ‘귀신 귀(鬼)’ 위에 붙은 꼭지(´)를 떼지 않으면 ‘죽은 혼’이 된다고 해서 그의 지론에 따라 귀신 귀자의 삐침별(부수)을 뗀 한자가 쓰여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대영토건의 토목기사로 일하던 문창해씨(해병 4기)는 김광추씨가 쓴 작은 글씨(해병혼)를 도내에 한 한 대 밖에 없는 도면확대기로 크기를 확대하느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3·4기 해병 참전 60주년 기념 책자에서 장시영 해병혼탑 건립추진위원장(현 삼남석유㈜ 회장)은 “탑이 준공되면서 장면 내각수반을 비롯해 김성은 해병대사령관이 참배하는 등 해병대의 명소가 됐다”며 “해병혼탑은 제주인의 기상이자, 제주 역사의 상징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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