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넓고 푸르른 잎새 아래 800년 안온하고 청빈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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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제주시 도련동 푸조나무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나의 모든 욕망(欲望)과 굴욕(屈辱)과 고통(苦痛)과 곤란(困難)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이양하의 ‘신록 예찬’ 중)

때는 신록의 계절 5월.

나이가 들면서 젊음을 잃어가는 사람과 달리 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아름답다.

지난 겨울 낙엽이 떨어져 뼈대만 앙상했던 늙은 나무들도 이맘때면 어김없이 푸른 잎사귀를 밖으로 내밀며 건재함을 과시한다.

쇠락할대로 쇠락했던 나무가 새 움을 틔워 줄기를 만들고 푸른 옷으로 몸단장 하는 모습에서 나이를 잊은 생명력을 넘어 경외감을 준다.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수령 500살인 나무가 고사되면서 그 뿌리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는 푸조나무를 찾았을때도 그랬다.

제주시 도련동 마을 운동장 한쪽에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는 2그루의 푸조나무는 300여 년 전 같은 자리에 자라던 나무 뿌리에서 새 움이 터 지금과 같은 멋진 모습으로 자란 것이라고 한다.

350살로 추정되는 ‘형님 나무’의 높이는 12m, 가슴 높이 둘레 3.8m.

300살 먹은 ‘아우 나무’는 12m 키에 가슴 높이 둘레가 2.6m로 ‘형님과 아우 나무’가 서로 가지를 의지하며 의좋게 서 있다.

연초록빛을 머금은 흰 꽃이 여린 잎과 가지 사이로 수북하게 피워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나무 가까이 걸음을 옮기자 3평 남짓하게 돌담으로 둘러진 야트막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병풍처럼 소박하게 꾸민 솜씨가 소박하고 정겹다.

할머니 신이 좌정했다는 이 신목(神木)은 마을 아낙들은 캄캄한 이른 새벽부터 찾아 남편과 자식들의 건강과 성공을 비는 마을 본향당이다.

20여 년 전 ‘매인 심방’(전담 무당)이 있을때만 해도 쌀점을 치며 마을 대소사에 대한 길흉화복을 점치고 주민들의 무병장수와 무사안녕을 비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예전만 못하지만 지금도 마을 본향당으로서의 위엄은 현재도 엄연히 살아있다.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나 회의, 마을 잔치가 열릴때면 주민들은 우선 나무앞에 마련된 제단에 음식을 올리고 마을을 보살펴 준데 대한 고마움의 예를 올린다.

나무는 이처럼 과거에는 물론 현재 주민들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자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나무와의 만남을 주선한 양기옥씨(68)는 “풍수상 이곳 지형이 푸조나무를 중심으로 깅이(게)가 다리를 벌리고 마을을 둘러싼 형태라 하여 깅이당이라고도 부른다”고 설명했다.

양씨는 또 “결혼이나 취업 문제 등 집안에 일이 있어 마음이 심란할 때 당나무를 찾아 마음의 위로를 얻고 해답을 찾았다”며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당나무를 정신적인 지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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