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순직비殉職碑를 세움에 있어서 행재정적인 지원을 하여주시는 양성언梁成彦교육감께서 참석해주는 데 대하여 먼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순직내력을 잘 아시어 비문을 써주신 현화진玄化珍 전 이사장과 본회 회원이신 고봉식高奉湜 전 교육감과 여러 내빈들이 와 주셔서 이 제막식을 더욱 의의를 깊게 합니다."

 

돌이켜보면 재작년 봄 제주시 삼양초등학교 교장 송문평宋文平(표선) 순직비를, 이어 작년 6월에 애월읍 구엄초등학교 당직교사 송승우宋承瑀(곽지)․이기형李綺珩(애월) 순직비를 세움에 있어 총동창회에서 학구내의 4개 마을 합동체육대회를 개최하여 축제의 장으로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가시교는 비록 폐교되어 허전하기는 하나 예술을 사랑하는 서재철徐在哲선생님이 빈 학교 공간을 멋있게 꾸며주시어 드나드는 나그네들이 머물게 해 놓았으니 참으로 이 순직비도 첨화시중添花示衆의 구실을 하는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삼양교의 건비를 끝나 귀가했더니 모 일간지에서 나에게 “공비共匪라는 말을 어찌 쓸 수 있습니까?”하기에, 나는 응수하기를 “비도(匪徒)라는 어휘를 번역했을 뿐이며 공비란 말을 사전에 있는 말인데 계엄령戒嚴令 아래서나 통제받지, 대명천지大明天地에서 모든 어휘를 못 쓸 이유가 없지 않는가.”라고 그러자 “교육청에서 발간한 <4․3사건 자료집>에는 무장대武裝隊로 표현되었으니 그게 옳지 않습니까?”

 

난들 성격상 물러설 수 없다. “내가 알기로는 무장대란 미국인 죤․메릴의 <제주濟州의 반란叛亂>이란 학위논문의 글에 처음 쓴 말인데 원문을 확인해 보지 못해 옳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원문을 접했는가! 그러나 무장대란 폭도든, 군인이든, 경찰이든 무장을 하면 무장대가 아니가!

 

이어 무어라 대꾸하기에 “우리 서로 만나 토론을 하자구나!”라고 제의했으나 전화는 끊어졌다. 늦게 배달된 신문에는 사진과 함께 커다랗게 기사화되었습니다. 더구나 제막식 자리에 참석한 양성언 교육감과 나의 손으로 비석을 가리키는 장면을 크게 사진에 담아 써져 있었습니다. 이 사진은 부탁한 것도 아닌데 무슨 뜻으로 편집상 크게 크러즈업하였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다음날 연구보고회에 참석한 아는 분이 전화 오기를 “제막식에 참석하였고 오늘 기사를 보아 언론 기사에 대한 반론 제언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라고, 나는 나의 글에 동조하는 우군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좀 있으니 모 방송기자가! 또 전에 기자였던 분이 “나도 그런 기사에 반론을 제기하겠다.”고 하면서 면담을 요청하기에 응하여 취재를 받은 바 있습니다. 그 분은 알고 보니 참전 유족이란 사실도 알았다. 흔히 기자의 횡포를 가리켜 ‘무관無冠의 제왕帝王’이라고 하는데 이 일이 일파만파 이렇게 시끄럽구나, 아무리 기자라 하드래도 옳은 길에 나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렇게 오보되는 제주4․3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퍽 고민스럽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건국하고자 제헌의원制憲議員을 뽑는 선거인데 마을마다 초등학교 교장들은 당연히 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을 받게 되니 공무원의 도리를 철저히 한 게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애국적인 교장을 철창으로 죽인다거나 학교를 불태우는 일은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섬의 삼양리나 구엄리와 가시리뿐만 아니라 여타 마을과 학교를 불태웠고 사람을 죽였습니다.

 

산북은 북제주갑선거구와 을선거구는 이런 방해로 두 선량選良을 뽑지 못했으나 그래도 현명한 남제주군선거구는 이런 방해에도 불구하고 오용국吳龍國(신효)을 선출하였으니 그는 등원登院하여 대한민국 헌법제정위원으로 당당히 대한민국 건국 역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제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4․3사건 때 인민유격대 사령관 김달삼金達三(영락)은 방화와 살인 등 폭동을 일으켜 놓고 월북하여 북한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헌법기초위원이 되었습니다. 이를 우리 제주인은 자랑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어떻든 오랜 인고忍苦의 지난날을 참으며 끈질기게 살아온 유족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대한민국과 함께 영원할 것임은 분명합니다. 순직하신 님이시여! 명복을 빕니다.  <2013년 1월 28일 제주도특별자치도 교육의정회 이사장 김찬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