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포태(胞胎)를 묻힌 땅을 그리워하고 늘 뇌리(腦裏)에서 떠나지 않는 숙명적인 땅이다.
이를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 하던가! “내 땅 까마귀도 아깝다.”라는 속담의 함의(含意)를 뜻을 알게 되리라.


우리나라의 가장 높은 백두산이 북쪽 오랑캐의 침입을 막아 당당히 선 모습에서 민족을 생각하게 되고, 남쪽 이족(異族)을 차단(遮斷)해 준 한라산은 국혼(國魂)을 느끼게 한다. 한라산 보다 더 높은 산이 개마고원 일대에 여럿 있지만 한라산을 들어나게 하는 뜻은 남쪽의 방패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모두 알고 있듯이 송나라 호종단(胡宗旦)이 제주의 지기(地氣)를 눌러 인재 배출을 막히게 하여 하늘을 날아 뒤쳐 도망쳐 나가려다가 그만 막혀 그래서 차귀도란 이름이 되었지, 곧 막힐 차(遮), 돌아갈 귀(歸), 섬 도(島)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이는 대국(大國)이라고 아무리 뽐내더라도 탐라혼(耽羅魂)은 잘못을 저지른 호종단을 떨어뜨렸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차단했던 것이다.
이로써 이곳 수월(水月)·원당(元堂)의 지기(땅 기운)만이 그대로 살아 있어 그의 가는 길을 차단한 것이 아닌가!


우리의 극서(極西)지점에 잔존한 위력이 이렇게 강했기에 가능했다. 이는 송나라가 세계를 지배하겠지만 이 섬의 위력과 영험(靈驗) 앞에는 무릎을 꿇었다는 실례를 남겼으니 어찌 장하지 않은가!
이제까지 전해오는 전설을 앞으로 대국 중심이 아닌 주체적이고 현대적인 주석(註釋)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제주 섬의 극남지점(極南地點)은 마라도(馬羅島)라면, 극서지점(極西地點)은 차귀도(遮歸島)다. 그래서 네델란드의 하멜 표류지는 수월봉 밑이라는 설이 최근 유력해졌다.


1842년 영국 군함 ‘사라망-호’가 마라도를 거쳐 극서지점을 돌아 소섬에 상륙하여 측량한 사실은 무슨 흉측한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金大建)일행이 표착한 지점도 당산봉 밑이 였지!
차귀 땅은 우리나라의 요새 가운데 요새지(要塞地)요, 수월봉·당산봉은 제주도의 방패(防牌)가운데 방패라 할 수 있다.


차귀도 여러 섬은 그 방패를 지켜주는 첨병(尖兵)이라네, 이런 요충지였기에 선사시대(先史時代)로부터 사람이 살아 돌칼, 돌화살, 돌도끼 등이 ‘수월-드르’에서 발굴된 일은 우연이 아니다.


고려시대 차귀현(遮歸縣)을 두어 성을 쌓아 군병을 주둔하고 무기고를 마련하여 서쪽의 목호(牧胡)도 쳐부수고, 동쪽의 왜구(倭寇)를 물리치고 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응진(膺懲)하고 차단했다.
고산! 어찌 높은 산일까, 아니 나지막한 산이지, 지기는 인물을 빚어난다고 하지 않은가! 앞에 언급하였듯이 지기(地氣)가 높아 산처럼 높고 걸출한 인물들이 배출한다.


이런 예언이 곧 고산(高山)이란 이름을 착안한 이 고장 선인들의 지혜 앞에 저절로 고개를 숙인다.
일제강점기 국권을 찾고자 하고 또 어두운 민권을 되찾고자 헌신한 변호사 이창휘(李昌輝), 해방된 조국에 교육건국과 향토발전이라는 일념으로 평생 애쓴 재일교포 독지가 고원일(高元一), 최근에는 선량(選良)도 배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사(賢士)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는 바로 고산 곧 ‘고지여고지(高地如高志)요, 고산출인걸(高山出人傑)’(높은 땅은 높은 뜻이 울어나고, 높은 산봉우리는 훌륭한 인걸을 비저내고 배출한다.)이란 정말 지기가 생동하기 때문이리라.
고산의 아사(雅士) 고동희(高東禧)선생이 <고산향우회총람>을 발간하려고, 글을 청하기에 사양했더니 더욱 강청하기에 차귀 땅의 사맥(事脈)이 남달리 특출해서 붓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2012년 2월 4일 임진년 입춘 날에 남헌서실(南軒書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