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나와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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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이 제주 개발의 밑거름이 돼"
새마을 정신은 제주도인의 협동심에서 기초
도민들 성실함이 대통령의 의지 이끌어 내
▲ 1961년 9월 8일 내도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충혼묘지를 방문해 호국 영령들에게 헌화.참배하고 있다.

나와 박정희 대통령 사이에 제주도가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나만 만나면 제주도 얘기를 했었다.

 

박 대통령은 내가 제주도지사직을 수행할 때는 물론이고 제주도지사직을 떠나 군에 있을때. 군에서 예편했을 때도 나를 보면 제주도 얘기를 꺼내고 흐믓한 표정을 지었다.

 

나와 박정희 대통령 사이에는 늘 제주도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도지사직을 떠난 나에게 제주도 얘기를 해주는 박 대통령이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박 대통령이 제주도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음을 매번 확인할 수 있어서 제주도를 위해서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5.16도로 얘기서부터 지하수 개발, 감귤산업 육성, 관광개발, 도로개발,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성실하고 근면한 제주도민의 품성 등 칭찬 일색이었다.

 

나는 도지사로 있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도 제주도에 대한 박 대통령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제주도를 지역개발의 성공적인 모델로 생각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박 대통령은 제주도를 동양의 하와이, 홍콩과 같은 관광도시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박 대통령의 생각에 깊은 공감을 하고 있었다.

 

이와함께 박 대통령은 제주도의 개발과정을 보면서 근면, 자조, 자립,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발전시켰다.

 

내가 생각하기에 박 대통령이 제창한 새마을 정신은 제주도민의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같은 제주도민의 정신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자 한 것이 바로 새마을 정신이었던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제주도 일주도로 과정에 보여준 제주도민의 자발적 참여와 스스로 이뤄내겠다는 자조와 자립의 정신을 정부의 장관들에게 매번 강조하면서 제주도의 본을 받을 것을 지시하곤 했다.

 

일부 장관들은 박 대통령에게 ‘왜 육지부의 군 정도에 불과한 제주도에 자꾸만 투자하고 관심을 갖고 애정을 표시하느냐’고 따지며 불평하기도 했다.

 

그때 마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 잘 살아보겠다고 노력하고 근면하는 자립정신이 강한 주민에 대해서는 정부는 가장 우선적이며 중점적으로 도와야 되겠다는 것이 나의 방침이다’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정부의 경제동향보고회때 제주도의 일주도로 포장공사에 남녀노소가 가릴 것 없이 자갈을 나르고 모래를 운반하고 협조하는 상황을 영화로 만들어 여러 번 상영하고는 장관들의 불평을 쑥 들어가게 했다.

 

그만큼 제주도에 대한 박 대통령의 애정은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제주도민들의 긍정적인 자세와 성실성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는 나라와 국민을 가난에서 벗어나 부강하게 만들고자 했던 박 대통령의 뜻과 제주도민의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나와 박정희 대통령의 인연
나와 박정희 대통령과의 첫 인연은 5.16이 나던 해로부터 3년 전인 1958년 내가 진해 한국함대(현재 함대사령부) 참모장(대령)으로 있었을 때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은 준장으로 진해에 있는 육군대학 학생으로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박 장군의 가장 가까운 후배이자 나하고 친한 강태민 장군이 나와 박정희 장군의 인연을 맺어주었다.

 

그 후 나는 식사대접도 하고 술대접도 하면서 같이 친하게 어울려 다녔다.

 

여름이면 인근 섬인 저도로 박 대통령가족과 내 가족은 아이들 모두 데리고 보트를 타고 해수욕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또 나는 박 대통령 가족을 가끔씩 내 관사로 초청해 내 아내가 준비한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당시 육영수 여사는 육군 장군 부인 하면 굉장히 화려하게 봤는데 검소하고 소박했다.

 

그 후 박 장군은 일선 지구로 갔다가 다시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으로 왔고 나는 진해 한국함대에 그대로 있으면서 인연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강태민 장군이 암으로 사망했는데 장례위원장이 바로 박정희 소장이었고 장례위원들이 그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대부분 5.16 주체세력들이었다.

 

5.16혁명최고위원회에 참여한 최고위원 중 김윤근 장군은 해군사관학교 동기생이고, 김동하 장군은 해군 선배이고, 송찬호 윤태일 장군은 국방연구원 동기생이고, 이주일 최고위원회 부의장은 그 이전부터 인연을 맺던 사이였다. 또 혁명정부의 한신 내무장관 정래혁 상공장관 등은 국방연구원 동기생이었을 정도로 많은 지인들이 포진해 있었다.

 

나와 5.16 주체세력과의 인연은 나중에 내가 제주도지사를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5.16직후 혁명최고위원회는 각 시도지사를 그 지역 사단장으로 발령을 냈는데 해군준장이던 내가 국방연구원에서 교육을 마치고 보직대기중인 것을 알고 나를 안성맞춤으로 보고 제주도지사에 발령을 내면서 박 대통령과 인연을 이어갔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사발령장을 주면서 내 귀에다 대고 ‘김 제독, 미안해 제일 먼데로 가게 해서. 가서 수고 좀 해줘’라고 하더니 ‘그 대신 지방시찰 가게 되면 제일 먼저 제주도로 갈게’라며 나를 다독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또 내게 제주도지사 임명장을 주시면서 ‘제주도는 특수한 여러 가지 여건이 있으니까 가서 잘 좀 해야겠다’고 특별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당신이 약속한 대로 5.16이후 4개월도 채 되지 않은 9월초 전국 지방시찰을 하면서 제주도를 가장 먼저 찾아 주었고 내가 추진하는 모든 것을 적극 지원해 줬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지사 재직중 소장으로 진급했을 때와 중장 진급시에도 직접 계급장을 달아주기도 했다.

 

군에 원대복귀해 진해 통제부사령관이 됐을 때는 대통령 별장과 공관을 직접 관리하면서 또다시 박 대통령을 모셨고 박 대통령의 배려로 해군참모총장이 됐고 해군 최초의 대장이 됐다.

 

해군의 오랜 숙원이 해군에서 대장을 배출하는 것이었는데 영광스럽게도 내가 대장으로 처음 진급한 것이었다.

 

또 나는 군에서 예편한 후 박 대통령의 배려로 영남화학 사장을 지냈고 주 베트남 마지막 대사를 맡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서거하실 때까지 20여년간 나와 박 대통령의 인연은 끈끈하게 이어졌는데 그 연결고리는 바로 제주도였다.
<정리=강영진 정치부장>yjka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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